누구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이 탐이나며, 동경이 생기게 마련이다.
특히, 신약하여, 융통성을 최대치로 발휘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주를 가진 이들에게 있어, 신강한 이들의 행동과 선택은, 부러움을 사기 충분하달까.
보통, 신약/극신약한 사주의 주인공들은, 선뜻 도전하고 선택하고 나아가지 못하는 일을, 신강/극신강한 이들은 아주 쉽게, 자연스레 시도하고, 또 끝끝내 거머쥐지 않던가.
나 역시, 내 사주를 극신강 사주라 들었던 과거에는, 두려움과 불안감은 감추고, 꽤나 무대뽀 스럽게, 도전하고 움켜쥐려 애썼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극신약 사주가, 극신강이라 착각하고 도전하고 욕심냈던 그 시절, 내 손에 남은 것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 시절에 느꼈던 "할 수 있을 것 같은" 강인한 마음은, 충분히 탐날만 한 것이었다.
뭐 극신약 사주란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그 모든 시도들이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도 뻔한 일이었구나"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그 당시의 그 경험들은, 나름 값지고 충분히 "긍정적인 영향을 행사한" 경험들이 아니었나 싶다.
자신감 있게,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믿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고.
수없이 넘어지고 주저앉아도 다시금 일어나 쟁취하려 애썼던, 그 모든 경험들은, 극신약임을 알고 난 이후의 방식과는 사뭇 달라졌으니까.
사주가 강하다는 점은, 꽤나 자신감 있게 많은 것들을 도전할 수 있는 용기와, 성공 확률을 높여주는 열쇠이기도 하다.
물론, 지나치게 외골수스럽게 강할 경우에는, 쓸데없는 고집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올 수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인생이란 것은, 한번쯤 "끝까지 간다" 는 정신으로 살아봄 직하지 않던가.
허나, 사주가 약하다 하여, 무언가를 도전하지 못하고, 쟁취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방식이 다르고, 움켜쥐는 힘과, 움켜쥐고 난 후, 유지하는 힘이 약하다는 점을 알고, 이에 대비해두면 되기에, 약한 사주가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융통성있게, 눈치 빠르게, 상황을 판단하고, 그에 맞게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갖추지 않았던가.
다만, 내가 지금도 가끔은 신강한 사주를 동경하는 까닭은, 이미 신강 사주들의 강하게 치고 들어가는 그 힘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
자신있게 도전하고 쟁취하려는 그 멋짐이, 여전히도 탐이나기 때문이리라.
아직까지야, 신강한 편이 조금은 나은 시대이긴 하지만, 시대는 빠르게 바뀌고 있고, 어느순간이 되면 오히려 조금쯤 신약한 편이, 세상을 융통성있게 살아갈 수 있기에 더욱 나은 시대가 다가오지 않을까 한다.
유연하게, 융통성있게 살아내는 그 모습이 사랑받는 어느 순간도 분명히 도래할 테니까.
허나 어떻든 간, 나는 극신강으로서의 버티고 돌진하는 삶도(비록 결과는 나빴지만), 유연하게 눈치빠르게 살아내는 삶도 다 경험해 가고 있으니, 이또한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 여긴다.
다양한 사람들의 수천만가지의 감정들, 입장들, 생각들을 모두 다 알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어느정도 가늠해 볼 수 있는 폭이 넓어졌음을 알 수 있기에.
이만하면 충분히 앞으로 잘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사주를 공부한 것도, 타로를 공부한 것도, 심리학을 공부한 것도, 별자리를 고민해본 것도.
다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 결과로서의 내가 존재하는 것이기에.
나에게 주어진 많은 것들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내 볼까 한다.
애시당초, 삶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여정이며.
그 길에서 많은 것을 찾아, 잘 활용하기만 한다면.
삶이란 것은 조금씩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갖추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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