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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담기/일상 이야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오늘.

by ★맑은 하루★ 2021.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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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씩, 나의 눈치 빠름이 짜증스러울 때가 있다.

그냥 적당히 모른척 넘어가도 될 만한 일들을, 지나칠 수 없을 때.

그래서 기어이, 그 일에 엮여, 오지라퍼가 되어버린 내 모습을 보면.

참, "나도 사서 일을 만드는 사람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더라는 거다.

 

뭐 최근 들어 호구 짓을 거의 다 내려놓긴 했지만.

사람이 뭐 그리 쉽게 바뀔까.

그저, 모른 척 하고, 마음의 문에 나무판자를 덧대고 또 덧댈 뿐.

그리고 아주 가끔, 그 덧대여진 문을 보며 자책하는 마음이 들 뿐.

사실,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다.

 

아마도 이런, 지나치게 빠른 눈치 때문에,

나는 사람들을 한번에 많이 만나지 않으려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좋은 사람들도 물론 많지만,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

그냥 딱 봐도 "여러번 꼬아 말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집구석에서 혼자 글이나 쓰고, 친한 친구와 오순도순 수다나 떨고 싶어진다.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이 악물고 버텨온 내 인생의 절반의 시간들이.

이제와서 왜이리 "아깝고", "덧없이" 느껴지는 걸까.

 

어릴 적엔, 다 맞춰주고, 분위기 메이커 노릇을 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억지로 쥐어짜~며 활달한 척, 외향적인 척~ 에너지를 쏟아내고.

동생들, 언니들 죄다~ 택시태워 집에 들여보내고, 집에 들어와서야 뻗어버렸던 과거의 내가 떠오르는 날이면.

도대체 그런 행동들이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걸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곤 이내, 텅 비어버린 마음으로, 가면을 열심히 바꿔 써가며.

그렇게 거짓되게 살아온 삶이라는 게 얼마나 미련맞은 짓이었던지.

다시한번 깨닫고 또 깨닫게 된다.

 

 

"누군가를 위해"라는 명목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나를 위하는 마음이 전제되어야 했음을.

나는 와장창 박살나 무너져 내렸던 몇년전의 내 모습을 통해 알게 되었다.

누군가를 위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 마음이 단단해야 함을.

쉬이 무너지고, 쉬이 박살나지 않을 강건함이 필요한 것임을.

당시의 나는 전혀 알지 못했었다.

 

그저 내가 예민하기 때문에, 그래서 와장창 무너져 내렸던 것이라 생각했을 뿐.

전제 자체부터 성립되지 않았음을 몰랐던 당시의 나는.

참으로 어리석고 미련맞았다.

 

물론, 예민함을 흙으로 잘 덮어, 무뎌지게만 만들어도.

그래도 한결 낫지 않을까 싶은 생각은 여전히 하지만.

사실 본질은, 그게 아니었음을 나는 왜 몰랐던 걸까.

 

 

열여덟, 집안이 무너지고 쑥대밭이 되어버렸던 당시부터 홀로 살아온 시간들이.

나를 아마도 여기까지 끌어 온 게 아닐까 싶다.

예민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으니까.

생존을 위해서는 필사적으로 가면을 써야 했었으니까.

 

지독히도 힘겨웠던 그때 그 시절들.

종종 친구들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라 말하지만.

나는, 단 한번도 "나도~"라고 말해 본 적이 없다.

어찌보면, 이건, 내가 유일하게 타인의 장단을 맞추지 않는, 나의 "마지노선"일 터다.

 

사실 나는 지금이 더 행복하고 안정되었다고.

과거의 너희들과 함께 했던 그 순간들보다도, 지금의 평화가 낫다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고.

 

목구멍까지 치미는 말들을 애써 눌러 담고 너스레를 떠는.

지금의 나에게, 나는 "괜찮다"며 위로를 건네고 싶다.

 

 

누구에게나 삶의 어느 한 순간, 아주 깊은 나락에 내팽개쳐진 듯한.

찢기고 베여,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어버리는 순간이 있다.

그리하여 기어이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싶어지는 "멍해지는" 순간.

 

그 순간의, 무너질 만큼 무너져, 숨조차 쉬기 버거워진 나에게.

미래의 내가, 그냥 툭 던지듯 "괜찮아질 거야"라며 위로해주었다면 어땠을까.

 

아주 가끔, 한톨의 마음도 부여잡기 어려워 지는 그 순간.

나를 붙잡아주고, 살게 하는 힘은.

사실, 내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이제는 안다.

누군가의 도움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억지로라도 끌어 올려 주어야 하는 것임을.

그 "끌어올림"을 위한 용기를, 스스로 쥐어짜내야 하는 것임을.

조금만 빨리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렇게나 빠른 눈치가, 왜 나 스스로에겐 작동하지 않는 건지.

지긋지긋하리만치, 타인을 향해서만 작동되는 이 예민 센서를.

뜯어고치고 싶은 마음이 요즘 자주 든다.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쫓아오는 듯한 요즘.

내가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것은 아마도.

우중충하게 흐린 날씨 탓일 터다.

 

유난히도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마음속을 휩쓸어 버린, 신축년 경자월 신묘일.

제대로 휘두르는 칼날에 사정없이 찢겨 나갈 나무들의 마음이, 내 마음 같다.

 

미안하고, 안타깝지만 냉정해야 하는.

썩어 문드러진 부분을 도려내야 더이상 썩지 않을 것임을 아는.

아무리 싫어도, 결국에는 잘라내야 하는 마음.

그래서 더 고통스러운 그런 마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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